남송 관요의 도요지에 관하여는 문헌에 ‘관요는 봉황산 아래에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위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1996년 9월, 우연히 봉황산의 남송 황성 유적지 부근에서 노호동 도요지가 발견되었는데 그 지점이 공교롭게도 바로 남송 수내사영이 있던 곳이었다. 출초된 대량의 자기 파편 가운데 자기 밑면에 유하 방식의 갈색 안료로 ‘수내사’와 ‘관요’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후 항주시 문물고고소가 고고학적 조사와 발굴을 진행하여 대량의 관요 자기 파편과 도구가 출토되었다. 남송은 또 제2의 관요를 지어 교단관요라 하였는데 그 지점은 지금의 항주시 남쪽 교외 오구단 일대이다.

남송 관요 청자는 주로 유색, 균열 무늬 및 조형으로 승부하였는데 이 기물의 조형은 소박하고 고풍스러우면서 단정하고, 유색은 옥같이 윤기가 흐른다. 따라서 장식 소재가 그리 다양하지 않아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 문양 외에 각종 줄무늬, 팔괘문, 구름, 번개, 소용돌이, 동심원, 점 등이 있는 정도이다. 장식은 보통 각획, 모인, 퇴첩, 날조, 투각, 투조 등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각획은 주로 완이나 반 같은 일상용기에 사용하였으며, 모인은 비교적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퇴첩은 병, 호, 로, 고 등 고기를 본떠 자기를 만들 때 많이 사용되었고, 투각과 투조 기법은 기물의 뚜껑이나 받침 부분에 많이 사용되었다. 장식 기법의 다양함, 가마재임 기술의 발달, 재임 도구의 다양한 형태 등은 모두 남송 관요 자기가 생산 기술 면에서 얼마나 중요시 되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의 품질이 뛰어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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