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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는 남송 문인들의 기록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으나 1987년에서야 하남성 보풍현 청량사에서 당시 궁정용 자기를 제작하던 도요지가 발견되었다. 여요가 궁정용 자기를 제작한 역사는 20여 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는 모두 민요 시기다. 여요관에서 전해지는 문물은 매우 적은데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00건이 안 된다고 한다. 그 희소성 때문에 명, 청, 양 애데 이르러 송대 명요를 논할 때면 종종 여요가 첫 손에 꼽히곤 하였다.
청대 문헌인『도설』에는 ‘여본청기요’라고 되어 있는데 여요는 본시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로, 연청유와 함께 흑유, 청유, 송삼채가 동시에 발견되고 있다. 고궁박물관, 상해 박물관, 천진 예술 박물관에 소장된 여요의 청자는 유색이 옅은 천청색으로 어떤 것은 조금 짙고 어떤 것은 조금 옅은데 반짝반짝 윤이 나고 광택이 은은하다. 표면에는 세밀하게 금이 간 것처럼 보이는 투명한 빙렬이 희미하게 나타나는데 이를 해조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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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관에서는 청자를 제작할 때 먼저 산화염으로 불을 때고 나중에 환원염으로 불을 때어 비교적 낮은 온도(1,125~1,225˚C)에서 소성하였다. 그런 다음 서서히 냉각시키는 과정을 거쳐 유약 성분 중에 대량으로 함류되어 있는 칼슘 장석의 짧은 바늘 모양의 결정체가 생기도록 하였고 기포가 조금 남아 있다. 여요의 청자는 소성 과정에서 아름다운 결정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유면에 옅은 천청색뿐 아니라 옥과 같은 유탁감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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