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圃美術館

중국의 도자기

중국의 토기 (진시황릉의 병마용)

죽포미술관 2022. 3. 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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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사사여사생’이라는 고대의 장례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사자도 저승에서 이승과 똑같은 생활을 한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부장품 중에는 하인이나 호위무사,

음악사나 무희 등을 본떠 만든 인형 동물 형상의 인형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를 통틀어 ‘용’이라고 부른다.

진과 한나라 때는 중국이 봉건 사회로서 점차 정착되고 발전하던 시기이며, 중국의 여러 민족이

상호 융합되는 과정에서 통일된 다민족 국가를 이루었으며 통일된 중앙 집권 왕조를 세웠다.

진시왕은 스스로를 ‘시황제’, 즉 최초의 황제라 칭함으로써

자신의 통치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통솔 아래 있는 국가와 군대 역시 전에 없던

위력을 과시하였다. 이는 일종의 시대정신이었으며 이러한 정신은 당시의 예술 작품에도 녹아들었다.

사진 출처-EBS 불멸의 진시왕

 

1974년 진시황릉 부근에서 발굴된 병마용은 웅장한 진대 예술의 위용을 자랑하였다.

실제 사람과 말 크기의 병마용 수천 개가 대열지어 서서 무장한 채 출동을 기다리는 듯했다.

투구와 갑옷을 입은 무사와 전투복을 입은 병졸등, 그들은 모두 손에 병기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부는 군대에서도 선봉에 서는 무사, 일부는 보병 및 거마를 만든 듯하다.

사진 출처-EBS 불멸의 진시왕

 

 

당시 군대의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건장하고 용맹스러운 네 필의 토기 말이 끄는 전차이다. 병마용갱은

당시 무적의 진나라 군대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기세등등한 기백을 한껏 뽐내고 있다.

 

사진 출처-EBS 불멸의 진시왕

이들 토기 인형은 거푸집을 이용한 성형과 빚어서 만드는 기법이 함께 사용되었다.

각 부분을 따로 제작한 후 붙여 형태를 만든 후 다시 표면에 진흙을 발랐다. 빚고 주무르고 쌓고 붙이며 깎고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여 연령대, 직위, 성격, 출신 지역 등의 다양함을 나타냈고

수천에 달하는 무사들을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이 무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전투복을 입고 있으며 허리띠를 졸라 메고 머리는 묶고 앞코가 네모진 신발을 신고 있다.

손에는 석궁과 활을 쥐고 있고 동으로 만든 화살을 가득 담은 화살통을 메고 있기도 하고,

손에 긴 창을 쥐고 허리에는 흰 도나 동검을 차고 있는 무사도 있다. 그중에는 수염이 무성하고 기백이 넘치는

장사가 있는가 하면 생기발랄하고 아직 치기가 남아 있는 소년병도 있다.

얼굴이 마르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노병이 있는가 하면, 높은 모자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장검을 허리에 찬

침착한 표정의 장군도 있다.

여기에 높이 1.5m, 몸길이 2m에 달하는 말은 살이 올라 있고 기세등등한 모습에 눈은 크고 귀는 작다.

입을 크게 벌리고 앞다리는 곧게 뻗고 뒷다리는 활처럼 근골이 튼튼해 보인다. 살아 있는 듯한 전투마들은

머리와 가슴을 꼿꼿이 세운 채 대열에 서서 군대의 위엄과 기세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한다.

진시황 병마용은 중국 고대 토기 예술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진대의 도공들은 고도의 예술적 창조력과 감탄을 자아내는

묘사 실력으로 후인들에게 놀랄 만한 예술 작품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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