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자를 많이 생산하는 절강은 청자의 고향이라고 한다. 청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당대의 유명한 도요지로는 월요,
무주요, 구요, 덕청요 등이 있고 송대에 이르러 청자는 새롭게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청자는
용천요, 요주요, 그리고 경덕진에서 생산되었다.
수많은 청자 도요지 중에서 월요의 발전이 가장 빨랐다. 가마의 수도 많았고 널리 퍼져 있었으며 상품의
질도 높아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월요’의 명칭은 당대에 시작되었으며 절강성 동북 일대 중
여요의 상림호를 중심으로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의 총칭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금의 여요현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지역의 상림호 도요지다.

월요청자는 용요에서 구웠고, 자석은 견운모와 석영의 혼합물로 고령토, 장석, 석영의 혼합물에 해당한다. 이 자석은
유기물을 적게 함유하고 점성과 흡착성이 적으며, 수운모 계열의 광물이 섞여 있어 철 함유량이 0.5~3%로 비교적 높다. 청자 제작에 쓰이는 석회유는 광택이 뛰어나고 투명도가 높으며 경도 역시 높다. 또한 용요의 환원염만이 이 같이 융점이 낮고 점성이 작은 유약을 유리처럼 투명하게 구워낼 수 있으며,
기물 위에 새긴 도안이나 무늬 혹은 입체감 있도록 부조한 부분을 선명하게 표현되도록 해준다.
월요의 청자는 모두 1,200˚C 이상에서 구워냈고 심지어 1,300˚C의 높은 고온에서 굽기도 했다. 태토의 질감과 유색으로 볼 때, 초기의 월요청자는 표면이 매우 매끄럽고 회백색을 띠었으며 소결이 단단하여 물을 흡수하지 않았다. 자기 외부 표면에는 보통 청유를 시유하는데, 그 유층이 매우 매끄럽고 균일하다. 시유하는 부분은 그릇의 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완, 잔, 발, 분 등은 내부에도 모두 시유를 하고 외부에는 바닥
근처까지 칠했다. 호, 관 등 그릇은 주로 구연부 가장자리 및 외벽에 시유를 하고 내벽에는 시유를 하지
않았다. 태토의 색깔이 유약의 색감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태토의 색이 옅으면 유약은 청색을 띠고 말기의 기물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색상도 짙어졌으며, 유층도 두꺼우면서 균일하여, 청회색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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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의 청자에서 주로 사용하는 장식 기법은 대나무나 뾰족한 도구로 파서 그림을 얕게 새기는 획화, 표면을 칼로 파서 그림을 새기는 각화, 손으로 장식을 빚은 후 붙이는 날조, 묘사할 대상의 윤각만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은 파내는 투각 등 다양하며, 무늬로는 앵무새, 구름 위의 용, 난조와 봉황, 나비, 새, 꽃 및 유명 인물 등이 있다.
월요는 유구한 역사적 전통과 뛰어난 기술력, 그리고 우수한 물질적 기초로 인해 중국의 모든 청자 중에서도 ‘최고의 가마’라는 명성을 얻었다. 일부 품질이 뛰어난 월요자기는 황궁에 진상하기 위해 특별이 만든 ‘공물’이었다. 당시 수많은
시인들이 월요자기를 칭송하는 시를 지어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구로 월요자기의 색채와 광택을 찬미하였다.
상림호의 월요청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는 메이지 시대의 일본 문헌에서도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시카와 고사이하는 시인은 자신의 한문시에서 상림호 청자의 역사와 유색을 묘사하였다. 명주 항구를 통해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서아시아의 아랍 지역 등으로 상림호 청자는 끊임없이 수출되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도, 이란, 이집트, 일본 등지에서 모두 월요 상림호에서 생산한 청자 유물이 출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