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나라 전 중국 도자기업은 강 남북 쪽으로 나뉘어져 자리 잡고 있었는데, 명청 이후에 경덕진이 홀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전국의 도자기 주요 생산지로 자리 매김하였다. 많은 도요지들이 연속해서 쇠락하고 원나라의 청화자기들이 생산되면서 경덕진의 발전에 기초를 다져주었다. 또한 경덕진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관영 도요지가 세워지고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경덕진은 중국 내 도자기 시장을 장악했고, 광활한 해외 시장을 홀로 차지하게 되었다. 명대 가정 만력 연간에 들어 경덕진의 관영 도요지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량은 몇 배로 증가하였고 개인, 민영 도요지도 가정 때에는 900곳 정도로 늘어났으며 도자기 생산자들도 100,000여 명에 다다랐다. 이렇게 생산된 도자기 제품들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까지 수출되었으며 유럽까지도 팔려나갔다.

명대 초 항해가 정화는 남해를 원정할 때 많은 청화자기들을 가지고 떠나 중국 도자기를 널리 해외에 알렸다. 명나라 중기, 15세기 이후에 유럽의 항해술이 발달하여 스페인, 포루투갈,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의 상인들이 망원경, 라이터, 시계, 향신료, 아연, 은 등을 가득 실은 배를 몰고 중국으로 와서 물건을 사고팔며 서로 교환하였다. 해외 무역 상인들은 중국 대륙에 들어와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 찻잎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팔았다. 먼 나라들로 무역을 하는 항해사들은 높은 파도에도 끄떡없는 도자기가 배의 아랫쪽 창고에 넣어 가져갈 수 있는 최고의 이상적인 물건이었기에 도자기를 가장 아래, 그 위에 찻잎과 비단을 실어서 가져갔다. 이와 같이 이윤이 많이 남는 무역 거래 덕분에 그당시 경제가 매우 번창하였고 동양과 서양의 관계도 우호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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