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채자기5
유럽의 예술적인 작품의 품격을 접하다 보니, 청대 말 경덕진의 도예 예술의 기품 또한 새롭고 품격 높으며 우아해지고 도자기의 기풍이 강건하게 변모하였다. 또한 섬세하고 화려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는 중국의 봉건적인 사회체제의 전형적인 궁중의 문화예술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고 단아하며 소박한 특징은 더 이상 중국 도자기의 주제가 아니었으며, 화려하고 인위적인 장식들이 청대 말에서 중화민국 시기까지 주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분채자기의 예술적인 흐름을 만들어낸 또 다른 것은 시민 문화가 유행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경덕진의 많은 도요지의 도자기에서 유행하던 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문양 및 그림들은 모두 백성들 사이에서 긴 시간동안 유행해 오던 토속적인 이야기와 신앙에서 유래하던 것이다. 옹정시대 유교, 불교, 도교의 화합을 추구하던 궁정의 신앙과 문과가 왕성하게 발전하여 민간 풍속을 반영한 다양한 문양과 도안이 궁정의 정통적인 예술 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도요지 분채자기 뿐만 아니라, 경덕진의 전체 장식을 사용하였다.

물고기들이 연잎 사이를 노는 모습의 어희연, 사자가 공을 굴리며 노는 모습의 사자곤수구, 나비가 박에 붙어 있는 모습의 접박과, 다산을 기원하는 석류다자, 자손의 번창을 대추로 표현하는 조생귀자, 새해 축하하며 복을 기원하는 삼양개태, 번창과 성공을 기원하는 말인 말상봉후, 모든 것이 봄과 같기를 바라는 새해 축하 말 연연유여 등이 도자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였으며, 도안들은 전통 도자기의 문양과 그 당시 유행했던 목판화, 세밀하게 그린 세화 및 기타 민간의 공예품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넉넉하고 가득 찬 것, 세련됨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생각과 특성 때문에, 장식들은 주로 화려하고 많은 색상이 사용되었으며 어떠한 것은 장식과 문양이 너무 많아 바탕의 색이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하였는데, 당시 대표적인 도자기로 ‘분채만화도’가 있다. 한편 도자기가 문양과 도안으로 가득 차게 그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꽃잎 문양이나 기하학적인 형태 등으로 여백을 살리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이를 경덕진에서는 ‘개당자’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