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도자기

법랑채와 옹정채-1

죽포미술관 2022. 3. 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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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초기 유럽 각지의 공예 미술품들이 중국에 온 사신이나 선교사들과 함께 청나라 궁으로 전해졌다. 강희제의 눈에는 당시 유행하던 오채, 두채 자기보다 수많은 서양 물건 중 화려하고 우아한 법랑 공예품이 황실의 존엄함에 더욱 어울리는 장식품으로 보였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특별히 중국에 파견하여 강희제의 궁궐에서 일하던 프랑스 학자 장 드 퐁타네가 본국에 서신을 전했고, 이로써 아름다운 법랑 공예품이 청 왕조의 궁에 들어오게 되었다. 강희 50년(1711) 이후, 청 왕실에서는 수입된 선홍색, 유리백 등의 안료를 사용하여 법랑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법랑사 크리프레이를 정식으로 왕실 조반처에서 일하게 하여 자태로 유럽의 법랑을 대신해 동태에 색을 입히는 방법을 연구하게 하였다. 강희 59년(1720)에, 자태 위에 법랑채를 구워내는 데 성공하였으며, 만들어진 작품은 접시, 그릇, 병, 호리병 등 소형자기가 대부분이었다.

법랑채서양인물문호리병

사진출처-블로그 중국도자기와 문화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aina425&logNo=130180469865

그러나 뛰어난 작품은 못 되고 일반적인 색을 사용하여 꽃을 덧붙이거나 글귀를 넣는 정도여서 장식이 단순하고 색은 짙었다. 사용되던 법랑 안료는 모두 외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적색, 황색, 백색, 분홍색, 남색, 자색, 녹색, 검정색 등이 있었다. 강희법랑채의 주요 장식 소재는 꽃이었다. 서양화가들이 제작에 참여한 탓에 상당 부분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호화롭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청 왕실이 추구하던 것과 맞아 떨어진다.

청 분채전지화문목호-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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