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말 명대초의 청화자기
명대 이후 시민 문화의 각성으로 희곡과 소설이 등장하게 되면서 중국인들의 미적 취향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청화자기는 흰 바탕에 푸른색 문양의 아름다운 장식 뿐 아니라 갖가지 다른 인물과 산수, 화조의 형상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당시 유행했던 희곡, 소설을 소재로 삼게 되면서, 소박하고 고상한 자기로서는 풍부한 표현력을 발산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해외시장에서는 물론 중국에서도 사람들이 청화자기를 선호하게 되었다. 명조의 통치자가 청화자기의 주요 생산지인 경덕진에 오로지 황실만을 위한 관요인 어기창을 세움으로써 청화자기의 제작이 관요 자기의 생산에서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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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 초기인 영락, 선덕 시기에는 관요 청화자기의 태와 유약의 제작이 이전보다 한층 발전하여 태질은 더욱 매끄러운 청백을 띠었고 유층은 더욱 빛이 나고 두터워졌다. 청화의 색상이 농염한 것이 이 시기의 공통된 특징이다. 명 중기 이후 경덕진의 장인들이 수묵 형식으로 표현된 문인화를 직접 도자기 장식에 이식함으로써 청화자기의 표현 기법이 더욱 다양해졌다. 청화는 유하채이므로 붓으로 청화 안료를 찍어서 아직 굽기 전의 흡수성이 있는 배태 위에 그리기 때문에 문인화에서 추구하는 먹이 스며든 것처럼 번짐 효과를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다. 이전의 도자기 장식은 거의 각종 도안 장식 위주였으나 이 시기에는 문인화의 영향으로 소위 ‘고사도’라는 인물화가 많이 나타났다. 그림 속의 인물은 행운 유수하거나 유유자적하고 또는 세속을 벗어난 머습 등 당시 문인 은사의 한가로운 생활의 정취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문인화의 영향을 받아 시문에 공을 들이고 정신세계를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형태를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인물의 표정과 풍채를 나타내는 데는 듬성듬성 텅 빈 듯한 배경과 하나가 된 듯 그저 슬쩍슬쩍 붓질 몇 번과 주변에 간단한 소품 정도를 개괄적으로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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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문인 거사의 생활을 표현한 것들 외에 신선, 도사의 그림도 많은데 이러한 그림의 인물들은 흔히 그 기색이 마치 날아오를 듯하고 기세가 호방하여, 배경에는 우뚝 솟은 누각에 처마가 이어져 있고 청산벽계와 구름이 감싸고 있다. 명나라 중기 청화자기의 인물 그림과 원대 청화자기의 인물 그림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화법을 보면 원나라의 청화 인물은 당시 판화의 영향으로 화풍이 세밀하고 정제된 느낌이다. 소재에 있어서는 원나라 청화자기가 대부분 당시 희곡이나 소설에서 소재를 취하였기에 모두 인물 이야기이며 서민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